건축일반<4> 쇼핑몰의 전신 ②만국박람회(Fair) : 이색적이고 모순적인 경험

2021-01-15
















쇼핑몰의 전신 ②만국박람회(Fair) : 이색적이고 모순적인 경험

“Victor Gruen, widely acknowledged as the inventor of the shopping mall.”

Chuihua Judy Chung, Jeffrey Inaba, Rem Koolhaas. (2001). Project on the cityⅡ Guide to Shopping. Tascehn. p.381


1. 현대의 쇼핑몰에 대해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쇼핑몰의 아버지, 쇼핑몰의 발명가라고 불리우는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입니다. 콜하스(Rem Koolhaas) 역시 그의 연구집 Guide to shopping에서 그루엔을 쇼핑몰의 발명가로서 언급하며 그가 설계한 사우스데일 쇼핑센터(Southdale Shopping Center, 1956)를 세계 최초의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의 쇼핑몰(Enclosed Shopping Mall)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비롯하여 그루엔이 설계한 거대 쇼핑몰들은 1950년대 미국의 소비문화와 맞물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쇼핑몰에 대한 그루엔의 아이디어와 전략, 그리고 공간모델은 현대의 쇼핑몰에서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2. 그루엔이 이렇게 거대한 쇼핑몰을 설계할 수 있었던 것에는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아케이드와 흔히 엑스포(Expo)라고 불리우는 만국박람회입니다. 만국박람회는 1851년 영국 런던의 수정궁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의 공공 박람회로 승격에 따라 개최지가 바뀌며 현재 약 160개의 나라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 대전에서, 그리고 2012년 여수에서 개최된 바 있습니다. 만국박람회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전시관을 꾸려 다양한 기술과 문화 등을 전시하며 구경하고 공유하는 풍부한 경험과 볼거리의 축제입니다.


3. Guide to Shopping은 1851년 수정궁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가 현대의 쇼핑 경험을 제공했다고 설명하며 아케이드의 연장선상으로 수정궁을 소개합니다. 과연 마치 도시의 거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하고 통제된 환경 속에 각양각색의 상품들이 즐비했던 만국박람회는 현대의 쇼핑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당시 수정궁 내부에는 여러 상품뿐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과 더불어 이국적인 장식들도 이접되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는 군중들에게 그야말로 모순적 경험(Contradictory Experience)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거대 쇼핑몰과 같은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최초의 만국박람회는 박람회가 열린 141일 동안 무려 600만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방문했으며 빅토리아 여왕도 15번이나 박람회장을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19세기 중반의 런던과 전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박람회였습니다.


4. 빅터 그루엔은 이러한 만국박람회를 관찰하여 자신의 건축적 재료로 삼았습니다. 1939년 조지 워싱턴 취임 150주년 기념일에 열린 뉴욕 만국박람회는 그루엔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박람회에서는 다양한 기술의 산물들이 공개되었는데 텔레비전, 루싸이트, 에어컨, 디젤엔진, 컬러필름, 형광등, 나일론 스타킹 등이 이 곳에서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루엔은 군중들이 첨단 기술의 산물들을 (마치 쇼핑하는 것처럼) 구경하는 것이 얼마나 미래 지향적이며 즐겁고 유쾌한지 깨닫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5. 뉴욕 만국박람회 작업에 일부분 참여했던 그루엔은 이를 통해 다양한 구경거리가 다른 어떠한 활동보다 더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시각적인 효과에 기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지론은 간단했습니다. 사람들이 더 즐거운 구경거리에 노출될수록 그 공간은 더 많이 사랑받고 결국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6. 이러한 관찰은 그가 쇼핑몰을 다양한 구경의 성지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쇼핑몰의 핵심은 외관으로 드러나는 건축물이 아니라 내부의 볼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껍데기인 건축과 전혀 상관없는 다양한 요소들을 내부에 이접시키는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쇼핑몰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최대 밀도의 점포수를 채우는 것보다 일부 점포의 개수를 줄이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매력적인 경험의 이접, 이를테면 분수나 회전목마와 같은 이색적이고도 모순적인 경험이 쇼핑몰의 매출에 더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7. 쇼핑몰에서 시도된 이러한 모순적인 이접은 어느 순간 일상적인 사무공간과 같은 곳에서도 눈에 띄기 시작하고있습니다. 구글, 픽사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의 사옥에 적용된 다양하고 실험적인 이접은 직원들의 만족도와 창의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고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불러모았습니다. 과거에는 각론적이고 질서정연한 공간이 사무공간의 정석과 같았다면 이제는 그러한 인식이 깨지고 마치 쇼핑몰과 같은 모습의 사무실, 더 나아가 병원, 공원, 도서관, 공공공간 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영원 팀장 I 디자인스튜디오 1